2021년 6월 14일 월요일, 부모님은 제주올레 8코스를 다시 걸으셨습니다. 부모님은 제주 1년 살이 중 제주올레 425km 전 코스를 완주하셨고, 완주 이후에도 마음에 들었던 길은 이렇게 다시 찾아 걸으셨습니다. 8코스도 이미 한 번 완주하신 적이 있는 익숙한 길이었지만, 이번에는 월평에서 시작하는 전체 구간이 아니라 대포포구에서 출발해 도리빨해안, 대포연대를 지나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를 둘러보고 중문색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다시 천천히 걸으셨습니다.
며칠 전 팔자좋은길에서 마을길과 숲을 헤매셨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하루였습니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검푸른 제주 바다를 벗삼아 걷는, 시야가 탁 트인 해안길이었습니다. 화산이 만든 검은 현무암 절벽과 에메랄드빛 바닷물, 주상절리의 육각형 돌기둥, 그리고 마지막엔 벌써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던 해수욕장까지 —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을 하루 종일 눈에 담으신 날이었습니다.
1. 대포포구에서 도리빨해안까지, 현무암 지대를 따라
대포포구를 출발한 올레길은 곧바로 자갈과 현무암이 뒤섞인 해안가로 이어집니다. 도로와 마을길이 아니라 파도가 부딪히는 검은 갯바위 지대를 옆에 끼고 걷는 길이라, 걸음마다 바다 내음이 훅 끼쳐 왔습니다. 아버지는 자갈밭 해안에 서서 옆에 늘어선 소나무 가지 쪽으로 오른팔을 뻗으셨는데, 손은 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지를 붙잡으려는 듯한 자세로 먼 바다를 배경 삼아 서 계셨습니다.

▲ 대포포구를 나서며 만난 첫 해안 풍경, 소나무 가지 쪽으로 팔을 뻗은 아버지
도리빨해안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제주 특유의 현무암이 바다를 병풍처럼 막아주는 지형으로, 물이 맑고 사람이 많지 않아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은 숨은 명소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실제로 이날도 잠수복을 입은 스노클러 일행이 바위 틈에서 장비를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구간에서 유난히 신이 나셨는지, 바위 사이로 들어찬 얕은 물가에 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사진을 남기셨습니다.

▲ 스노클링 명소로도 알려진 도리빨해안, 현무암 바위 지대의 넓은 전경

▲ 현무암 바위 사이 얕은 물가에서, 두 팔을 벌린 아버지
2. 대포연대, 옛사람들이 바다를 살피던 자리
도리빨해안을 지나면 길은 잠시 바다를 벗어나 대포연대로 향합니다. 대포연대는 조선시대 봉수와 함께 해안 방어를 담당했던 연대(烟臺)로, 안내판에는 "연대는 옛날에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연락을 취하던 통신시설"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2000년 2월에 복원되었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어, 옛사람들이 바다 건너 위험을 살피던 자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조선시대 해안 방어시설이었던 대포연대 안내판
3. 대포연대에서 주상절리로 가는 숲길
대포연대를 지나 주상절리관광지로 향하는 길은 다시 숲길로 이어지는데, 우거진 나무들이 터널처럼 하늘을 가려 뜨거운 한낮의 햇볕을 식혀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초록빛 나무터널 아래서 손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마치 숲이 만들어준 그늘에 감탄하듯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 대포연대를 지나 주상절리로 향하는 길, 초록빛 나무터널 아래에서
숲길 한쪽에는 "협죽도(유도화) 독성 주의안내문"이라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잎과 줄기, 뿌리까지 식물 전체에 독성이 있어 만지거나 접근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예쁜 꽃 사진과 함께 걸려 있어 오히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유명한 장소만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 이런 작은 안내판까지 꼼꼼히 담아 두신 것도 부모님다운 기록이었습니다.

▲ 길가에서 만난 협죽도 독성 주의 안내판
4.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육각기둥이 만든 절경
주상절리관광지 매표소를 지나면 본격적인 볼거리가 시작됩니다. 전망대 입구의 배 모양 조형물 앞에서 아버지는 마치 항해를 나서는 선장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하셨고, 그 뒤로 "주상절리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함께 담겼습니다.

▲ 주상절리대 입구, 배 모양 조형물 위에서 두 팔을 들어 올린 아버지
용암이 식으면서 갈라져 만들어진 육각형 돌기둥, 주상절리는 제주 전역에서도 특히 이곳 중문대포해안에서 가장 뚜렷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문 대포 주상절리대"라는 제목이 붙은 안내판에는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수축작용에 의해 쪼개져 생기는 육각형의 돌기둥"이라는 설명과 함께, 주상절리가 제주 전역에서도 천지연폭포, 안덕계곡, 산방산 등 남쪽 해안을 따라 나타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 "중문 대포 주상절리대" 안내판, 주상절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절벽은 사진으로 담아도 그 규모가 다 전해지지 않을 만큼 웅장했습니다. 검은 육각기둥이 바다를 향해 겹겹이 늘어선 모습에, 부모님은 한참을 걸음을 멈추고 서 계셨습니다.

▲ 바다를 향해 겹겹이 늘어선 주상절리 육각기둥 절벽
5. 주상절리 전망대 산책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망대로 향하는 산책로는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나무 데크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난간에 기대거나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을 만큼 아찔한 절경이었지만, 부모님은 안전선을 지키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내리셨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늘어진 계단참에서 아버지는 등산화 끈을 고쳐 매다 말고, 카메라를 향해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이셨습니다.

▲ 소나무 가지 아래 산책로 계단에서, 힘차게 손을 들어 보이신 아버지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니 "주상절리 산책로"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도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하셨는데, 뒤로는 함께 걷던 다른 방문객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담겼습니다.

▲ 주상절리 산책로 표지판 앞에서,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인 아버지
6. 야자수가 늘어선 산책로, 중문관광단지로
주상절리 산책로를 빠져나오면 뜻밖에도 이국적인 야자수길이 펼쳐집니다. 키 큰 워싱토니아 야자수가 줄지어 선 산책로는 방금까지 걸었던 화산암 해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라,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야자수 길 한가운데 서서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돌하르방 조형물을 배경 삼아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남기셨습니다.

▲ 야자수가 늘어선 산책로에서, 중문관광단지로 향하며
7. 퍼시픽리솜 안내판을 지나, 다시 만난 바다
야자수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돌기둥과 항아리가 놓인 조형물, 이국적인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길 한쪽에는 "퍼시픽리솜 안내도"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돌고래와 함께하는 마린스테이지, 요트투어, 제트보트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표지판만 확인하고 걷던 길을 이어가셨는데, 숲을 벗어나자 다시 제주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6월 중순이라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었지만, 저 멀리 백사장에는 벌써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숲길 끝에서 다시 만난 바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의 풍경
8. 해변 위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해변 가까이 이르자 데님 조각과 짚으로 꾸민 이국적인 야외 카페가 나타났습니다. 야자수 사이로 늘어진 장식들 아래, 아버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카메라를 향해 서 계셨습니다. 카페 캐노피 너머로는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고, 주황색 파라솔이 늘어선 테라스에는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오래 걸은 뒤라 다리도 쉴 겸, 이색적인 풍경도 구경할 겸 잠시 들른 자리였습니다.

▲ 해변 근처 이국적인 야외 카페에서, 입구에 선 아버지와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풍경
9. 한국콘도 입구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을 지나 걸음을 이어간 부모님은 한국콘도 입구 정류장에서 이날의 걸음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듯, 버스 정류장에 붙은 "한국콘도 입구" 표지판을 사진으로 담으셨습니다. 사진 한쪽에는 아버지의 모습도 살짝 함께 담겼습니다. 대포포구를 나선 지 여러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면 놓쳤을 도리빨해안의 현무암과 주상절리의 육각기둥, 야자수길과 해변 풍경까지 — 걸어서만 볼 수 있는 제주의 여러 얼굴을 하루 동안 차례로 만난 걸음이었습니다.

▲ 어머니가 기록으로 남긴 한국콘도 입구 표지판, 이날의 걷기를 마무리하며
이날의 한마디
"야호~~^^ 중문색달해수욕장이 보인다." — 아버지
📌 코스 정보 & 요약
- 일시: 2021년 6월 14일 (월)
- 장소: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일대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대포동)
- 코스 개요: 대포포구 - 도리빨해안 - 대포연대 -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 중문색달해수욕장 - 한국콘도 인근까지 이어지는 제주올레 8코스 중 해안 구간입니다. 8코스 전체는 월평아왜낭목쉼터에서 대평포구까지 이어지며, 공식 총 거리는 약 19.2km(A코스 기준), 예상 소요시간은 약 5~6시간입니다. (2021년 6월 방문 당시 기준이며, 최신 정보는 방문 전 다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동행: 부모님
- 난이도: ★★☆☆☆ (전체적으로 평탄한 해안 산책로이나, 주상절리 전망대 구간에 계단과 오르내림이 있음)
- 대중교통: 부모님은 항상 청소년문화의집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셨습니다. 서귀포·중문 방면으로 가는 버스로 이동한 뒤, 대포동 또는 중문관광단지행 버스로 환승해 대포포구·주상절리 관광지 인근에서 하차합니다. 노선과 배차 간격이 자주 바뀌므로, 출발 전 제주버스정보시스템(bus.jeju.go.kr)에서 최신 시간표를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주변 맛집: 색달 해녀의 집 (중문색달해수욕장 백사장 입구 인근, 해녀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 모듬 등 판매)
부모님은 이미 한 번 걸었던 길을 다시 찾으면서도 지루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처음 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이번엔 여유롭게 다시 보니 더 예쁘다"는 말씀을 하시며 같은 길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으로 걸으셨습니다. 대포연대의 오래된 안내판을 꼼꼼히 읽으시고, 협죽도 경고문 같은 작은 표지판까지 사진으로 남기신 것도 이번 걸음의 특징이었습니다. 주상절리 전망대에서는 한참을 서서 파도가 육각기둥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셨고, 야자수길에서는 마치 여행지를 바꾼 듯 한껏 들뜬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같은 코스를 두 번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과 여유를 새로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사진 속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니어를 위한 이 코스만의 팁
- 주상절리 산책로는 데크와 계단이 많습니다: 평탄한 해안길과 달리 전망대 구간은 오르내림이 있으므로, 미끄럼 방지가 되는 신발과 여유 있는 걸음이 필요합니다.
- 햇볕을 가릴 그늘이 적은 구간이 있습니다: 대포포구~도리빨해안 구간은 탁 트인 해안이라 그늘이 부족하므로, 챙이 넓은 모자와 자외선 차단제를 미리 챙기시길 권합니다.
- 주상절리대는 입장료가 있는 유료 관람 구역입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전망대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방문 전 운영시간과 요금을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긴 구간을 걸을 땐 중간 쉼터를 활용하기: 중문색달해수욕장 인근에는 야외 카페나 쉼터가 있어, 오래 걸어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 가기 좋습니다.
🎒 준비물 실사용 후기
이날은 바닷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 구간과 그늘 없는 절벽길이 이어져, 챙이 넓은 모자와 편광 선글라스가 특히 요긴했습니다. 주상절리 전망대의 나무 데크와 계단은 젖어 있으면 미끄러울 수 있어, 밑창이 잘 잡히는 트레킹화를 신으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중간에 그늘이 거의 없는 구간이 길게 이어지다 보니, 챙겨간 물을 평소보다 자주 드셔야 했다고 합니다. 가벼운 손수건이나 목에 두르는 쿨타월도 이런 뙤약볕 해안 코스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아들의 질문 코너
Q. 같은 길을 두 번 걸으니까 어때요? 처음 걸을 때랑 다른가요?
A. (어머니) "처음엔 사실 정신없이 걷기 바빴는데, 이번엔 같은 길인데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훨씬 더 예쁘게 보이더라. 주상절리 앞에서 한참을 그냥 서서 파도만 봤어."
Q. 야자수길에서 사진 되게 신나 보이시던데, 진짜 남쪽 나라 온 기분이었어요?
A. (아버지) "그렇지, 방금까지 시커먼 화산 바위 보다가 갑자기 야자수가 쭉 늘어서 있으니까 순간 여기가 제주인지 헷갈리더라. 그래서 더 신나게 사진 찍었지."
같은 길을 다시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한 풍경에 마음이 바빴다면, 두 번째는 이미 알고 있는 길이기에 오히려 더 천천히, 더 오래 머물며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날 부모님이 주상절리 앞에서, 그리고 뜻밖의 야자수길과 해변 근처 카페에서 지으신 표정들이 바로 그 여유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검은 화산 바위 해안에서 시작해 육각기둥의 절경을 지나, 이국적인 야자수길과 해변 풍경으로 이어진 이날의 걸음이 부모님께 오래 남을 즐거운 기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날 다시 걸으신 8코스는 부모님이 2021년 제주 1년 살이 동안 완주하신 제주올레 425km 전 구간 중 하나입니다. 22일간의 완주 여정 전체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제주올레 425km 완주 대장정 - 1편부터 19편까지, 22일간의 기록
'올레길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올레14코스 (2) - 옹포포구~협재해수욕장~한림공원~금능해수욕장~월령포구~월령선인장군락지 (6) | 2026.09.28 |
|---|---|
| 올레10코스 (2) - 하모해수욕장~섯알오름~송악산~사계포구 (6) | 2026.09.10 |
| 올레7코스 (2) - 외돌개부터 이중섭거리, 자구리공원까지 (6) | 2026.09.08 |
| 올레1-1코스 - 우도, 425km 제주올레 완주에 마침표를 찍던 날 (6) | 2026.08.06 |
| 올레20코스·21코스 - 김녕서포구부터 종달바당까지, 광해군의 흔적과 지미봉의 절경 30km (8) | 2026.08.05 |